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르난 크레스포 (문단 편집) === 국가대표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에르난 크레스포(국대 시절).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BDDED 2%, #FFFFFF 2%, #FFFFFF 4%, #ABDDED 4%, #ABDDED 6%, #123163 6%, #123163 94%, #ABDDED 94%, #ABDDED 96%, #FFFFFF 96%, #FFFFFF 98%, #ABDDED 98%)" {{{#ffffff '''아르헨티나의 영원한 골목대장'''}}}}}} || [[1993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호주|1993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서는 아르헨티나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1991년 대회에서 후안 에스나이더가 큰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징계를 받았고 그것 때문에 크레스포는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해서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에게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 때 크레스포는 6골로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와일드카드였던 브라질의 [[베베투]]와 공동 득점왕.]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 프랑스 월드컵]]은 6살 많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1996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 멤버들로 구성되어 출전했다. 아직 전성기였던 바티와 포지션이 겹치는 크레스포는 계속 벤치신세였다. 딱 한 번 그라운드에 나올 기회가 생겼는데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전에서 [[승부차기]].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 다른 선수들은 다 성공한 [[승부차기]]를 크레스포 혼자 실축하고 만다. 다행히 잉글랜드에서 2명이 실축해서 8강 진출에 성공하나 [[요한 크루이프|크루이프]] 이후 가장 강력한 스쿼드라는 [[거스 히딩크|히딩크]]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를 만나 [[데니스 베르캄프]]의 쓰리터치 결승골로 패배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 월드컵]]은 그야말로 아르헨티나 전체의 '''[[흑역사]]''', 또한 그에게는 더더욱 흑역사. 조국이 [[디폴트#s-2|디폴트]] 선언[* 국가가 재정적 파산을 선언하는 것이다.]한 터라 본선 경기가 치뤄지는 [[대한민국]]&[[일본]]으로 올 때도 선수들의 본인들 사비를 털어 왔으며[* 축구협회도 당연히 돈이 없었다. 애초에 국가에 외환이 없는데 축협에 돈이 있을리가 없었다. 결국 FIFA가 월드컵 본선 진출 팀에게 기본적으로 지원해주는 돈과 선수들의 사비를 들여서 선수진과 스탭들을 일본으로 데려가며 돈이 드는 모든 걸 직접 충당했다.] 같은 조에는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가 묶이며 죽음의 조에 배치됐다. F조에 배치된 아르헨티나는 일본에서 경기를 하게되었는데 당시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던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는 [[데이비드 베컴]], [[마이클 오언]] 등의 스타들을 앞세워 일본 팬들의 열성적 응원을 받은 데에 비해 아르헨티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야유뿐이였다.[* 이때 아르헨티나는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유치경쟁에서 한국을 지지했었기에 공만 잡으면 항상 야유소리밖에 못 들었다.] 결국 마이클 오언의 할리우드 액션이 속은 주심이 [[페널티킥]]을 주었고 베컴이 성공시키며 1대0으로 패한다.[* 이때 오언의 할리우드 액션에 당하며 페널티킥을 내준 선수가 바로 토트넘 핫스퍼의 전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국대에선 영구퇴출되며 다시는 국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이때 페널티킥을 선언한 주심도 축구계 최고의 명심판으로 불리는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주심. 그야말로 시뮬레이션 한 방에 여러 사람의 흑역사가 생겨났다.]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크레스포는 경기 종료 직전 기어이 득점을 올렸고 그 경기는 마지막 경기인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경기장에 주저 앉아 울어야만 했다. 이겨야 할 경기를 이기지 못해 16강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상황을 설명하자면 잉글랜드전에서의 패배로 아르헨티나는 F조 3위로 처져있었다. 결국 스웨덴전에서 승리해야지 16강 확정이었는데 아르헨티나는 이 경기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 축구를 선보이며 스웨덴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골을 넣지 못했고 되레 후반 14분 프리킥으로 실점을 내줬다. 후반 43분에 얻은 페널티킥도 실축했으나 크레스포가 세컨볼을 집어넣은 것. 그렇게 추격의 불씨를 살렸으나 결국 무를 캐며 최종적으로 승점 4점으로 조별리그를 마쳤다. 그리고 스웨덴과 잉글랜드가 승점 5점으로 각각 조 1위와 2위를 차지하며 아르헨티나는 조 3위로 탈락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다. 그는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죽음의 조인데도 불구,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코트디부아르]]를 격파하고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6:0으로 격파하는 등 선전했으나 8강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고 만다. 비록 팀은 탈락했으나, 활약을 인정받아 실버슈를 받았다. [[2007 코파 아메리카 베네수엘라|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별리그 1,2차전에서 3골을 몰아치며 기세를 올렸지만 허벅지 부상으로 아웃되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절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국가대표로 차출되었지만 자신의 자리에는 [[곤살로 이과인]]이 들어감으로 인하여 차출되지는 못했다. 그걸로 대표팀 여정은 끝이 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